무서운 이야기 모음집 1탄
첫번째 이야기 - [찰나]
[지금 사당, 사당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고객 여러분께서는 한 걸음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언제 들어도 정말 친절한 목소리. 나는 지하철 안내 음성에 맞춰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그때 작은 어린아이 하나가 지하철 선로 쪽으로 아장아장 걸어갔다. 그리고
"어어!!"
잠시 머뭇거리고 있던 찰나, 아이가 지하철 선로 아래로 뚝하고 떨어져 버렸다.
‘젠장··· 어떡하지?’
옆에 있는 할아버지는 조금 놀랐을 뿐 자신이 나설 필요는 없다는 눈치였고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 아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 만한 사람은 신체 건강한 청년인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저번달에도 꼬마 아이 하나가 장난감을 주우려다 철로에 떨어져서 안타깝게도 다가오는 지하철에 치였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아니, 그런 사고가 있었는데도 여태 안전장치를 안 해 놨어? 지하철 공사 놈들은 대체 뭐 하는 거야!"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은 후 눈을 질끈 감고 심호흡을 한 뒤 냅다 철로로 뛰어든다. 쓰러져 있는 꼬마는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고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는 순간 환한 불빛이 내 시야로 들어옴과 동시에 거대한 차체가 무서운 기세로 나를 밀어낸다. 사방에 피가 흩뿌려졌고 이제 내 몸뚱이는 산산이 부서졌다.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원망스럽다. 하필 철로에 떨어진 아이도, 아이에게서 잠시 시선을 뗀 그 엄마도, 내 일이 아니라는 듯 냉정하게 쳐다보는 할아버지도 모두가 원망스럽다.
"하···."
눈을 뜨고 한숨을 내쉬자 지하철이 내 눈앞을 쌩하고 지나가다가 점차 속력을 줄였다. 그래, 어차피 구하려 해 봤자 결국은 못 구했을 거야. 나는 죄책감을 느끼려는 나 자신에게 한없이 관대했다. 그때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는 아이의 시신도, 아이어머니의 울부짖음도 없었고 갑자기 온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만약 저번에 내가 뛰어들었다면 그 아이를 구할 수 있었을까. 내 앞에 지하철이 섰다. 아이의 시신을 끌어안고 우는 여자의 모습이 지하철 유리창에 비쳤다. 그녀는 경멸하는 시선으로 나를, 그리고 모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젠장···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할 때부터 구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두번째 이야기 - [계단의 기억]
우리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생 때 이혼했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가 재혼을 하고 나에게는 8살의 남동생과 6살의 여동생이 생겼다. 또다시 시간이 흘러 어머니는 쌍둥이 동생을 임신하게 됐는데 바로 그 무렵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나는 집의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층계참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검은 그림자를 목격하게 됐다. 자세히 보니 중학생 정도 돼 보이는 남자아이였는데 그는 벽 쪽으로 얼굴을 돌린 채 무릎을 껴안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전부터 집 안에서 사진을 찍으면 수많은 오브가 나타나거나 한밤중에 발소리가 들리기도 했었기 때문에 딱히 무섭지는 않았다.
그런 일이 한동안 이어지던 어느 날, 새아버지가 꿈 이야기를 해 줬다. 간밤에 꿈에서 2층 계단을 내려오는데 웬 사내아이가 계단에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새아버지는
"너 누군데 여기 있어? 여긴 너희 집이 아니니까 당장 나가!"
이렇게 소리쳤고 아이의 뒷덜미를 잡아서 현관까지 끌고 갔다고 한다. 그때 아이가 울면서 연신 사과를 하더니 대뜸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언제나 떠들썩해서 부러웠어··· 같이 놀고 싶었어···."
그 말에 왠지 마음이 찡하면서 미안했던 새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다음에 우리 아이로 태어나거라. 부유하진 않아도 매일 즐겁게 지내고 있으니까."
그러자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현관 밖으로 나갔고 그러면서 꿈에서 깨어났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무서워했고 옆에 있던 나는 무심코 이렇게 말해 버렸다.
"혹시 매일 계단에 있던 그 아인가?"
그런 내 말에 부모님은 많이 놀란 것 같았는데 새아버지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머니는 완전히 겁에 질려 버렸다. 하지만 가사와 육아에 쫓기면서 어머니도 점차 그 일을 잊어 갔고 날마다 떠들썩하고 즐거운 일상들이 이어졌다.
그 뒤로 세월이 흐르고 흘러 건강하게 태어난 쌍둥이가 더듬더듬 말을 하게 됐을 무렵, 문득 그때 그 일이 떠올랐는지 어머니는 쌍둥이들을 붙잡고는 농담 식으로 너희들은 태어나기 전에 어디에 있었냐고 물었다. 큰아이는 모른다고 짧게 대답했고 옆에 있던 우리가 역시나 하고 웃고 있는데 작은아이가 놀라운 말을 하는 것이다.
"계단."
그 말에 어머니와 나는 서로 마주 보며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정말로 그 아이가 우리 가족으로 태어난 것인지, 그냥 동생이 아무 말이나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이상하고 섬뜩한 경험이었다.
세번째 이야기 - [병원의 비상계단]
몇 년 전에 저는 어느 지방에 있는 종합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야근을 하게 돼서 병실의 불을 끌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소등 전에는 규칙상 병실뿐만 아니라 병동 전체를 둘러보고 점검해야 했습니다. 병동 전체라고는 해도 실제로 점검하는 곳은 작은 면담실과 엘리베이터 홀, 회의실과 당직실, 비상계단이 전부였지만요. 점검 도중에 크게 이상이 있다거나 한 적은 없었고 오히려 일부러 돌아보는 게 귀찮을 정도였지만 규정을 어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날도 재빨리 돌아볼 생각으로 비상계단 쪽부터 점검을 했는데 계단과 계단 사이 층계참에 웬 아이가 등을 보인 채 서 있었습니다. 환자복 차림의 그 아이는 세 살 정도 돼 보였는데 몹시 야윈 얼굴로 링거를 옆에 세운 채 가만히 서 있는 겁니다. 링거에는 링거 봉투가 매달려 있고 시린지 펌프도 달려 있었습니다. 여느 병원과 마찬가지로 비상계단은 인적이 뜸한 곳인데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서 깜짝 놀라고 말았죠. 게다가 아이는 창문 하나 없는 벽을 멍하니 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는 딱히 무섭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저 곧 소등 시간인데 어린아이가 보호자도 없이 여기서 뭐 하는 걸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서 뭐 하고 있냐며 이제 곧 불을 꺼야 한다고 말을 걸었지만 아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간호사마다 한 개씩 지급되는 PHS가 울렸습니다. 선배가 도와달라고 급히 전화를 걸었더군요.
"여기 응급실인데 빨리 좀 와 줘야겠어!"
저는 아이에게 빨리 병실로 돌아가라는 말을 남기고 재빨리 그곳을 벗어났습니다. 소등 전에 정신없이 이런저런 잡무를 마친 후 간신히 소등을 하고 휴게실에서 한숨 돌리고 있자니 비상계단에 있던 그 아이가 떠올랐습니다. 문득 아이가 제대로 병실로 돌아간 건가 걱정됐죠. 그래서 선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잠깐 비상계단에 다녀오겠다고 하자 선배가 저를 붙잡는 겁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세 살 정도 되는 어린아이가 링거에 의지해 걸을 수는 있어도 그것을 들어 올려서 계단 층계를 올라갈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아이는 작은 키에 체구가 무척 작았고 링거에는 제법 무게가 나가는 기계 장치까지 붙어 있었습니다. 선배는 할 말을 잃고 있는 저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했습니다.
"혹시 부모가 함께 와서 링거를 가져다 놓은 거면 어쨌든 곁에 보호자가 있었단 거니까 우리가 굳이 무리해서 갈 필요는 없어. 근데 만약 그게 아니라면··· 더더욱 안 가는 게 낫겠지?"
하지만 병원 건물의 소등 직전 세 살 된 아이를 일부러 비상계단 층계에 데려다 놓은 후 그 곁을 떠나는 부모가 있을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소아과 병동은 제가 그 아이를 본 곳에서 네 층 아래에 있었고 저는 컴퓨터로 소아과 입원 환자들을 확인해 봤습니다. 그날은 연휴 직전이라 외박 환자가 많아서 소아과 병동 대부분이 비어 있었는데 외박을 하지 않은 5세 이하 환자는 고작 몇 사람뿐이었습니다. 개인실에 입원해서 인공호흡기로 버티고 있는 아이,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아이와 두 시간 전에 막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아이까지. 아까 전에 봤던 그 아이 같은 환자는 없었죠. 그럼 그 애는 설마···. 제 얼굴이 점점 굳어지자 선배가 뒤에서 모니터를 슬쩍 들여다보며 씩 웃더군요.
"이제 알겠어? 이 정도는 익숙해져야 돼. 난 죽은 환자한테서 귀걸이를 뺏긴 적도 있었다고."
그러면서 선배는 단발머리 속에 숨겨져 있던 귀를 보여 줬습니다. 귓불이 한 번 찢어졌다가 붙은 것 같은 흉터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는데 한번은 선배가 죽은 환자를 처치해 주다가 문득 뒤를 돌아봤다고 합니다. 그 순간 귀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그날 선배가 착용했던 귀걸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고 귓불이 찢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놀란 마음으로 천천히 죽은 환자 쪽을 바라보자 귀걸이 한 짝이 그 죽은 환자의 가슴 위에 포개어진 손 사이에 들어가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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